CA 리버 플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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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연고지로 하는 스포츠 클럽이다. 줄여서 '리베르'라고도 불린다.
프로 축구 부문은 해당 클럽의 각 부문 중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며, 현재 아르헨티나 프로 축구 1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축구 팀으로서 아르헨티나 국내 빅 5(Los cinco grandes)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국내 리그 우승 36회와 국제 대회 우승 15회를 기록한 명문 클럽이다. 그 중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4번과 인터컨티넨탈 컵 1번이 포함된다. 'FIFA 선정 20세기 클럽(FIFA Club of the Century)'에서 9위로 선정되어 아르헨티나 클럽 중 유일하게 순위권에 들었으며,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IFFHS)에 의해 2000년 이후 4차례 세계 최고 축구 클럽으로 선정되었다. 우루과이의 페냐롤과 함께 사실상 남미 최고 클럽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르헨티나 축구 리그가 프로 리그화된 1931년부터 1부 리그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011년 최초의 2부 리그 강등을 경험했지만, 1년 만에 1부 리그로 복귀하였다.
여담으로 1996/1997 시즌 리버 플레이트는 남미 클럽 축구 역사상 최강팀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세대의 축구 팬들도 이름을 알 법한 아리엘 오르테가, 산티아고 솔라리, 마티아스 알메이다, 첼소 아얄라 등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2. 명칭에 대하여
팀명 'River Plate'를 한글로 어떻게 표기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국내에서는 '리버 플레이트', '리베르 플라테', '리버 플라테', '리베르 플레이트'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고, 표기가 통일되어 있지 않아서 팀 관련 기사가 올라오면 표기를 문제삼는 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흔하다.[2][3] 라이벌 보카 주니어스도 '보카 주니어스'와 '보카 후니오르스'가 혼용되지만 이제는 '보카 주니어스'로 거의 굳어지고 있는 반면, 이쪽은 유독 표기가 많이 갈린다.
우선 'River Plate'라는 명칭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국경을 나누는 강인 라플라타 강(Río de la Plata)을 영어로 표기한 것인 만큼, 원칙적으로는 영어 명칭 그대로 '리버 플레이트'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양쪽의 발음이 반반 섞인 '리베르 플레이트'라는 발음을 쓴다.'''[4][5] 이에 대해서는, 스페인어권에서 '리버[ˈrɪvə(r)]'는 어려운 발음에 속하지만 '플레이트[pleɪt]'는 어렵지 않기 때문에 '리버'만 '리베르'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으나 사실 여부는 불명확하다. 확실한 것은 현지에서 '리버 플레이트'나 '리베르 플라테'라 부르는 경우는 없다는 점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관련 질문에서 "'River Plate'는 영어 표기법에 따른다면 '리버 플레이트'로 적을 수 있지만, 만일 현지에서 영어 발음과 에스파냐 어 발음을 혼합하여 부르고 있다면 그에 따라 두 가지 언어 표기법을 모두 적용해야 할 수도 있다."라고 답변하였고,[6] 심의 결과 ''''리버 플레이트'라는 표기를 채택했다.'''[7] 다만 질문과 답변을 대조해보면 "현지에서 영어 발음과 에스파냐 어 발음을 혼합하여 부르고 있다면 그에 따라 두 가지 언어 표기법을 모두 적용해야 할 수도 있다."라고 답변한 것은 '리버 플라테'라는 표기가 어떤지에 대한 답변이고, 현지에서 대부분 '리베르 플레이트'라고 발음한다는 것은 확인하지 못하고 표기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3. 역사
1901년 5월 25일, 산타 로사(Santa Rosa)와 라 로살레스(La Rosales)라는 2클럽이 합병하는 형태로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라보카(La Boca)에서 설립되었다. 이후 명칭은 여러 후보 이름 중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리버 플레이트라는 명칭으로 결정되었다. 이름이 결정된 경위는,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인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선박 컨테이너에 '더 리버 플레이트(The River Plate)'라는 영어 문자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동료에게 팀 이름으로 제안했는데 받아들여진 것이다.
리버 플레이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란디(Sarandí)에 있는 경기장을 잠시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후에 라보카로 돌아가 레콜레타(Recoleta)로 이전하였다. 클럽은 레콜레타에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1938년 현재의 위치인 누녜스(Núñez)와의 관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북부의 벨그라노(Belgrano) 이전을 강요하였다. 1938년 5월 25일에 에스타디오 모누멘탈(현 에스타디오 안토니오 베스푸시오 리베르티)이 개장하여 CA 페냐롤과의 기념 경기가 열렸다(3-1 승리). 이후 현재까지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당시 리버 플레이트는 라이벌 보카 주니어스 등과 함께 아르헨티나 리그를 씹어먹던 강팀이었다. '라 마키나(La Maquina)'라고 불린 공격진을 앞세운 리버 플레이트는 10년간 4회 우승을 거두었고 라 마키나는 그대로 코파 아메리카에도 출전하여 아르헨티나의 대회 3연패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8] 한편 전술한 1996/1997 시즌에는 마르셀로 가야르도, 후안 파블로 앙헬, 아리엘 오르테가, 에르난 크레스포, 후안 파블로 소린으로 구성된 공격 편대를 일컬어 '라 마키니타(La Maquinita)'라고 불렀다. 라 마키티나는 '작은 기계'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아르헨티나의 명문 클럽으로 군림해왔던 리버였지만, 1991년에 호세 마리아 아길라르가 회장으로 취임한 후 클럽은 경영 위기를 비롯한 문제를 안게 되었다. 그 중에는 클럽이 바라브라바(barrabrava, 남미의 과격한 서포터 집단을 이르는 말)에게 이익을 주는 유착 구도도 존재하고 있었다. 2007년에는 곤살로 이과인의 이적으로 얻은 이익을 서로 빼앗고 바라브라바 간 파벌 투쟁이 일어나고, 그 중 멤버가 총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클럽의 성적도 부진하고, 클럽 사상 최초로 2부 리그로 강등될 위기에 직면하였다.
2007년 후기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명문 팀이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다음 시즌 전기 리그에서 최하위에 그치고, 또한 2009-2010 시즌에도 전기 14위, 후기 13위로 하위권에 그쳤다. 2010-2011 시즌 다시 상위권을 되찾고 이듬해 코파 수다메리카나 출전권 획득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라누스에 패배하여 과거 3시즌 평균 성적을 역전당하고 2부 리그 4위 CA 벨그라노와 프로모시온(promoción)이라고 불리는 승강 플레이 오프에 돌입하게 되면서 출전권을 박탈당하였다. 또 리버의 2010-11 시즌 후반 성적은 9위였지만, 아르헨티나 리그는 과거 3시즌 평균 성적으로 강등 팀을 결정하므로, 결과적으로 2008-09 시즌 부진이 클럽이 프로모시온(promoción)에 돌입하게 만들어 버렸다. CA 벨그라노와의 플레이 오프 1차전에서 팬의 난입으로 20분 이상 추가 시간이 늘어났고, 그 결과는 0-2 패배였다. 홈에서 맞이한 2차전에서 2점차 이상의 승리가 필요했지만, 관중 폭동에 의해 후반 44분 경기가 중단된 채 1-1로 비겼다. 따라서 리버 플레이트의 클럽 사상 첫 2부 리그 강등이 결정되었다. 경기 후 흥분한 팬들이 소요 사태를 일으켰으며, 미리 투입되어 대기하고 있던 경찰 2,200명이 이를 진압하였다. 아르헨티나 당국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68명이 부상당하고 50명이 체포되었다고 한다.[9]
아르헨티나 국민의 절반 가까운 팬을 거느리는 리버가 2부 리그에 참가하게 되면서 유료 케이블 방송뿐이었던 2부 리그 TV 중계가 지상파 국영 방송에서도 이루어지게 되어, 일간지 스포츠 칸과 스포츠 신문에 2부 리그 경기 일정이 크게 실리는 등, 아르헨티나 국내에서 2부 리그에 대한 정보가 크게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
2012년 시즌 처음으로 참가한 2부 리그에서, 명문 팀을 상대로 승리를 노리는 의욕 넘치는 상대에게 고전을 하기도 하였지만, 최종 라운드에서 전 프랑스 국가 대표 다비드 트레제게의 2골에 의해 승리를 거두고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년 만에 1부 리그에 복귀하였다.
승격 후 2013-14 시즌 피날에서 우승하며 36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3/2014 시즌, 전기 리그 우승팀과 후기 리그 우승팀이 맞붙어 최종 우승팀을 가리는 수페르코파에서 헤르만 페세야의 헤더로 산 로렌소를 1-0으로 누르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리버는 2014 코파 수다메리카나 출전 자격을 얻었으며, 2015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도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2014년 5월 28일, 팀을 우승으로 이끈 명장 라몬 디아스 감독이 사임을 발표했다. 팬들은 멘붕 상태. 사임 이유는 일절 밝히지 않았으나,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구단과 보드진, 팬들, 선수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후임으로는 자신의 첫 커리어인 우루과이 나시오날에서 리그 우승을 이끈 마르셀로 가야르도 감독이 지목되었다. 또한 리그 우승 이후 팀의 에이스였던 카르보네로는 AS 로마로,[10] 차세대 공미로 기대받던 마누엘 란시니는 알 자지라로 이적하였다.
2014년 마르셀로 가야르도 감독은 기대치가 높은 상황에서도 빠른 시간에 팀을 장악하여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초반 압도적인 화력으로 리그 1위를 질주하기도 했지만 2위로 마감했다. 그러나 코파 수다메리카나에서 클럽 역사상 최초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5년에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8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에서 라이벌 보카 주니어스를 만나게 되어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수페르클라시코 결승전을 치렀다. 1차전 보카 주니어스의 홈에서 2:2 무승부, 2차전 중립 구장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11] 3:1 승리를 거두어 합계 5:3으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9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대회 4강전에서도 보카 후니오르스를 탈락시키며 2년 연속 결승에 올랐지만 브라질 CR 플라멩구에게 1-2로 져서 우승은 실패했다.
2020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는 4강에서 브라질 파우메이라스와 1승 1패를 주고받았으나 2:3 골득실로 밀려 탈락했다.
4. 홈구장 - 엘 모누멘탈(El Monum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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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구장인 에스타디오 모누멘탈 안토니오 베스푸시오 리베르티는 '엘 모누멘탈'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5. 유니폼
창단 당시에는 흰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 검은색 양말을 썼다. 현 리버 플레이트 홈 유니폼의 디자인이 결정된 것은 1904~1905년경이다. 어느날 밤, 카니발이 열렸고 그것이 끝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오래된 자동차가 1대 있었는데, 그 차량의 후방에 붉은 비단 리본이 있었다. 그곳에 있던 청년 5명 중 엘리사 페시레는 장난 삼아 그것을 훔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훔치기 위한 동기도 있었다. 그 리본을 자신들의 흰색 유니폼에 붙여서 포인트를 넣으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리본을 상의에 비스듬하게 붙이는 것을 결정하였다. 이렇게 빨간 어깨 띠를 붙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선 무늬 유니폼이 탄생하였다.
다른 설도 있는데, 이 디자인은 성 게오르게(Saint George)의 상징인 흰 바탕과 붉은 십자가에서 따왔다는 설이다. 리버 플레이트를 창단하기 위해 합병된 산타 로사의 기존 회원들 중 다수는 조상이 제노바 출신이었다. 여기에서 영향을 받아, 제노바의 후원자인 성 게오르게의 상징이면서 제노바의 깃발 문양이기도 한 흰 바탕과 붉은 십자가를 유니폼으로 나타냈다는 것이다.
6. 서포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고급 주택가가 연고지이기 때문에 보카 주니어스보다 부유층 서포터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보카 주니어스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서포터가 있다.
7. 라이벌
오랫동안 CA 리버 플레이트와 보카 주니어스는 라이벌 관계에 있으며, 양자의 대전은 '엘 수페르클라시코(Superclásico)'라고 불린다. 양 클럽은 모두 빈곤층이 많은 강변 지역인 라보카 지구에서 기원을 가지지만, 1923년 리버는 부유층이 많은 도시 북부의 누녜스(Núñez) 지역으로 연고지를 이전하였다.[12] 수페르클라시코는 세계에서 가장 격렬하고 가장 중요한 더비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영국 옵서버 지는 죽기 전에 봐야 할 50가지 스포츠 이벤트 중 1위(라 봄보네라에서 열리는)로 수페르클라시코를 선정하였다. 서포터의 열정은 주목할 만하며 두 클럽의 서포터가 진을 치면 스탠드에 불꽃놀이, 화려한 색종이 클럽 깃발, 종이 롤이 등장한다. 양 서포터는 유명한 록 밴드의 음악을 튼다. 이 라이벌전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시코이며, 가장 권위 있는 더비 매치이다. 평균 시청률은 2000년대에는 매년 대략 40% 내외를 기록하였다. 2012년 10월 29일 시코의 시청률은 24.8%였다.
CA 인데펜디엔테, 라싱 클루브, 산 로렌소까지 다른 빅 5끼리의 대전도 시코라고 하며 관심을 모은다.
리버 플레이트의 마스코트는 현재 닭이다. 그러나 1984년부터 5년간은 사자였다. 이것은 보카 주니어스의 팬들이 리버 플레이트를 '갈리나스(gallínas, 암탉)'라고 조롱하였고, 그것을 불쾌하게 생각했던 당시 회장이 닭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사자 로고를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5년 후 회장이 클럽을 떠나고 사자 로고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리버 플레이트는 조롱의 의미인 닭을 역으로 마스코트로 선정하기로 결정하였다.[13]
8. 주요 선수
- 곤살로 이과인(2005~2006)
- 라다멜 팔카오(2001~2009)
- 레오나르도 실라우렌(1939~1941)
- 마르셀로 가야르도(1993~1999, 2003~2006, 2009~2010)
- 마티아스 알메이다(1991~1996, 2009~2011)
- 산티아고 솔라리(1996~1998)
- 아돌포 페데르네라(1935~1946)
- 아리엘 오르테가(1991~1996, 2000~2002, 2006~2012)
- 알렉시스 산체스(2007~2008)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1943 ~1949)
- 앙헬 라브루나(1939~1959)
- 앙헬 보시오(1932-1936)
- 에데르 알바레스 발란타(2013~2016)
- 에릭 라멜라(2009~2011)
- 에스테반 캄비아소(1998~2001)
- 엔소 페레스(2017~)
- 첼소 아얄라(1995~1998, 2001~2005)
- 초리 도밍게스(2001~2004)
- 카를로스 페우셀레(1930~1941)
- 테오 구티에레스(2013~2015)
- 파블로 아이마르(1997~2000, 2015)
- 페르난도 카베나기(2001~2004, 2011~2012, 2014~2015)
- 펠릭스 루스토(1942~1957)
- 하비에르 사비올라(1998~2001, 2015~2016)
- 호세 마누엘 모레노(1935~1944, 1946~1948)
- 후안 카를로스 무뇨스(1939~1950)
- 후안 킨테로(2018~2020)
[1] M: 메트로폴리타노, N: 나시오날, A: 아페르투라, C: 클라우수라, I: 이니시알, F: 피날[2] 리베르 플레이트, 보카 주니어스 꺾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3] 리버 플레이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서 보카 주니어스에 승리[4] 24초[5] 1분 3초[6]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93316[7] http://kornorms.korean.go.kr/example/exampleList.do?regltn_code=0003[8] 물론 그 과정에서 모든 대회에 그대로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9] 아르헨 축구 명가 110년만에 2부 강등[10] 이후 곧바로 체세나로 임대되었다.[11] 2차전은 리베르의 홈 경기였으나 경기 전 소동으로 연기되었다가 국외에서 치르는 것으로 변경되었다.[12] 부에노스아이레스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라보카 지역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다른 지역의 지역감정은 상상 이상이다.[13] 비슷한 사례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야구 팀 뉴욕 양키스가 있다(뉴욕 양키스 문서의 개요 문단 참고).